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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Jeongmin Lee)

이정민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다.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개최한 세오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 Lost Room ](진선갤러리, 서울, 2010), [ Gray Silence ](신한갤러리, 서울, 2010), [ White Out ](갤러리 도올, 서울, 2015) 등 총 4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이정민 작가의 작품은 키미아트갤러리, SEMES 및 다수의 개인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다.


POINT!    이정민 작가의 작품은 1프로에서 35프로의 회색지대에서 대상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대상에 대한 견고한 표상이라기보다는, 마치 대상을 감싸고 있는 대기와 분위기, 그 대상이 뚜렷히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발현하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Sound] 시리즈에서 인물은 고요함 속에 부유하는 존재로서 재현되면서 정적이면서도 사색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Sound, 2010, oil on canvas, 60.6 x 72.7 cm
Sound, 2010, oil on canvas, 60.6 x 72.7 cm
Sound, 2010, oil on canvas, 60.6 x 72.7 cm
Sound, 2006, oil on canvas, 60.6 x 72.7 cm each
Knocking, 2009, oil on canvas, 72.7 x 60.6 cm

CRITICAL ESSAY    “나의 회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침묵과 고독감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소리는 침묵이며, 이런 침묵이 가져다주는 고요한 공기의 흐름은 인간의 실존적인 고독감을 보여준다.”  ● 이정민의 회화노트에서는 존재에 대한 진솔한 회의의 흔적들이 목격된다. ‘오직 존재할 뿐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는 존재’가 언급되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에 선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다음과 같은 구절도 눈에 띤다 : “날마다 웃고 떠들며 사는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 ● 트라우마적 리얼리즘, 곧 ‘상처입은 리얼리즘’은 예컨대 카라바죠나 쿠르베의 리얼리즘, 즉 사실의 극적이고 장엄한 재현이나 보이는 것으로만 표현의 범주를 한정지으려는 것들과는 상반된 태도다. 작가의 트라우마적 리얼리즘은 거의 모든 면에서 대상의 시각적 실재를 파헤치거나 과장하기보다는 감추고 뭉뚱그리며 삭감한다. 실재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실제로 다가서는 것이랄까. 또는 벗어나기 위해 벗어나야 할 자리로 되돌아가는!  ● 마치 안개에 휩싸여있는 것 같은 대기에 의해 대상들의 구체성은 후퇴하지만, 그것들의 맥락은 더 입체적인 것으로 전진한다. 공간의 원근은 소멸되거나 현저하게 완화되지만, 공간을 지배하는 뉘앙스의 심도는 오히려 깊어진다. 사물들의 차이를 상당히 무마함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며, 흐릿한 가운데서 회화적 호소력은 더 해진다. 이 회색의 드라마, 색의 결핍, 묘사의 적절한 누락, 콘트라스트의 극적인 퇴화로 조율되는 그것이야말로 상처입은 리얼리즘을 구성하는 조형적 요인들인 셈이다. 이 때 작가의 삶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주관적 해석이 그 후퇴와 전진, 소멸과 현존, 색의 삭감과 뉘앙스의 배증을 조절하는 조리개 역할을 한다. – 심상용 (미술사학 박사, 미술평론) [ 회색의 미학, 상처입은 리얼리즘 ] 중에서 


ARTIST STATEMENT    나의 회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침묵과 고독감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소리는 침묵이고, 이런 침묵이 가져다주는 고요한 공기의 흐름은 인간 본연이 가지고 있는 실존적인 고독감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심리적 혼란과 광기는 내면의 소음들이고, 균형과 평화는 내면의 침묵들이다. 오늘날의 실존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의미가 부여되지 아니하고, 오직 존재할 뿐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의지할 수 없다. 이미 존재라는 모든 가치를 믿을 수 없어 막다른 골목에 선 개인의 괴로운 현존 상태인 것이다. 이런 개인의 침묵은 마지막 보루요,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에 비해볼 때 잠재적으로 확보해놓은 견고한 요새(손타그)”나 다름없다. 현대사회는 불특정 다수인으로 형성된 대중사회 즉 익명성의 사회이며, 인간의 개체성과 주체성을 말살하고 획일화된 일반법칙을 강요한다. 바로 이러한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나’를 상실한 비 본래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런 실존을 카뮈가 주장한 대처 방안인 사막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버티며, 나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통하여 좀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며 연구 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싶다.  ●  침묵은 관계에 있어서 보호막이 되면서 또한 슬픔, 죄책감, 실망, 어색함, 약함, 행복, 놀라움 등 우리들이 맛보는 모든 감정 상태들과 우리의 감추어진 반응들과 가장 은밀한 환상과 환각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동시에, 겉으로 드러난 표면 뒤에 숨은 이면이고 가면의 뒷면이며 인격의 감추어진 얼굴이기도 하다. 눈앞을 가득 채워도 아무것도 실재가 잡히지 않는 뿌연 안개처럼, 침묵은 가득한 텅 빔으로 이루어진 감각의 장소를 만들어주는데, 이런 비어있는 공간은 나에게 채워지지 않을 결핍으로 인식되어진다. 결핍과 결여로 나타난 현실의 인식으로 인해서 현실의 인간들이 감내하는 것은 결핍과 거리감이다. 나에게 그림은 텅 비어있는 의미 공간이다. 더 이상의 확실한 의미의 진술이 아닌 불확실한 감성을 재현하는 것으로, 화면상의 그려진 대상의 모습은 단지 그려진 그대로의 대상 그뿐이며, 본질을 암시하는 상황적인 단편적 이미지는 의미의 증거가 아닌 존재의 증거로써 남는다. 이러한 존재들의 주가 되는 공통점들은 인간의 근본적 감정 중 하나인 고독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사는데, 주로 내가 받아들이는 고독은 격한 감정이 아닌, 조용하고 담담히 다가오는 모호하고도 아이러니한 슬픔이다. ● 고즈넉하고 평온한 일상의 공간에서 정적인 고독을 의연한 태도로 대처하는 상황, 그리고 fog drawing으로 표현된 인물화를 현시대의 얼굴로 내세워 실존의 증거로써 나타내고자 한다. 바쁜 현대인들의 삶 속에는 외로움 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안정과 결핍의 감성이 혼합되어진 정지된 회화 너머에는 마음 속 폐허의 끝에서 불어오는 자유가 서려있다. 텅 빈 마음의 공허, 그 안의 결핍이 가져오는 아이러니한 평화로움이 존재함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일상이라는 공간 속에서 현 시대의 사람들이 같이 공감하며 겪는 자신들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