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

박학성 (Xuecheng Piao)

박학성 작가는 중국 할빈 예술대학에서 서양회화를 전공한 후 중국인민해방군 모군 본부 문학예술창작실 전문작가 및 중국철도청 선전부 문학예술창작실 전문작가를 지냈다. 그후 한국으로 이주하여 SBS 미술감독을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 중국,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백범 김구 기념관의 초상화 연작과 티벳공주, 각계 기업인, 금융인, 문학인의 초상화가 있다.    


POINT!    박학성 작가의 작품은 임파스토 특유의 강한 텍스처가 인물과 의상, 그리고 배경에 생동감을 줍니다. 오랜 회화의 연륜으로 붓과 물감이 생동하며 주저없이 인물을 그려내려가며,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인종을 표현합니다. 개인의 흉상에서 전신 인물화까지, 역사 위인의 전신상과 군상 인물화까지 박학성 작가의 작품은 전통회화의 영역에 견고한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효창공원, 백범 김구 기념관 내, 백범 초상화, 1996

작품 21, 2018, oil on canvas, 60 x 50 cm
남자상, 2018, oil on canvas, 22.7 x 15.8 cm
작품 20, 2018, oil on canvas, 60.6 x 50.0 cm

INTERVIEW 

백범기념관 김구 초상화 그린 화가 박학성씨 

국민일보  2003-08-18  이광형기자   ● 지난해 10월 건립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 이 기념관의 전시관 1층 로비에는 150호 규모의 김구 선생 초상화가 걸려 있다. 웃는 얼굴에 인자한 모습의 백범은 기념관 개관 이후 처음 맞는 광복절에 대한 감회가 어떠할까. 백범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박학성(50)씨. 지난 15일 광복절에 이곳을 찾은 그는 “선생께서는 저렇게 웃고 계시지만 분단조국의 현실에 가슴 아파하실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중국 지린성 출신으로 하얼빈예술대학을 나온 박씨는 1989년 서울에 정착한 뒤 5차례의 개인전을 가진 서양화가. 쟁쟁한 국내 작가들을 제치고 백범기념관의 상징인 김구 선생의 초상화를 맡아 화제를 모았다. “몇년 전에 가진 인물화 전시회 때 운보 김기창 선생께서 보시고는 ‘내 초상화 하나 그려달라’고 하시더군요. 저로서는 대단한 영광이었죠. 완성작을 보시고는 흡족해 하셨는데,주위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백범의 초상화를 맡게 됐죠.” ● 그러나 백범의 얼굴을 본적 없는데다 정면에서 찍은 자료사진도 없어 캐릭터 설정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그는 기록화를 남긴다는 생각으로 몇달간 관련서적 탐구에 매달렸다고. “그림을 그리기전에 깊이있는 인물연구가 필수거든요. 역사적 배경과 적절한 연령 등 고려해야할 사항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영웅의 이미지도 갖추어야 하겠죠.” 그렇게 작업한 백범의 초상화는 나라와 백성을 사랑한 민족지도자다운 면모를 풍긴다. ● 박씨의 초상화 작업은 초등 4년때부터 시작됐다. 덩야핑 등 중국 정치인들의 인물을 판화로 제작하는 바람이 거세었던 문화혁명 시절,남다른 판화솜씨를 과시했다. 71년 열린 지린성 미술제전에서 전시사상 처음으로 중학생의 작품이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중학교 졸업후 국립문화예술창작실에 들어가 73년에는 국가 추천으로 마오쩌둥 초상화를 그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중국 국립역사박물관, 혁명역사박물관 등에 소장중이다. ● 한국에 거주하는 친척들의 권유로 서울에 온 그는 티베트 여인이나 중국 소수민족의 인물을 다룬 작품 전시회로 주목받았다. 미술관을 배경으로 삼은 SBS드라마 ‘재회’의 내용감수를 맡기도 한 그는 91년 한국 여자와 조선족 남자의 결혼 첫 케이스라는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의 솜씨가 알려지면서 유명인사들의 인물화 주문이 쇄도했다. 장강재 한국일보 전회장, 신격호 롯데회장의 인물화가 대표적인 작품. ● 중국에서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포기하고 조국에 정착한 박씨는 국내 미술계 발전을 위해 열심히 붓을 잡겠다고 의욕을 다졌다. 그는 광복절을 맞아 “김구 선생의 초상화를 관람하면서 오로지 조국을 위해 열정을 쏟은 백범의 애국정신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림값은 얼마쯤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존경하는 민족지도자를 그린 것만 해도 영광인데,무슨 그림값이냐”면서 웃었다. ●